2009년 10월 19일
미로(the Labyrinth).retakeversion.023.

한 여자가 있었다. 좋아하는 일이기에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면서 일을 열심히 하던 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자신을 좋아한다는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의미를 보여주었으면서도, 긴 이별을 앞에 두고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하는 여자였다. 일 때문에 여자는 남자의 곁을 떠나야만 했고, 1년이라는 시간 뒤에 무사히 남자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남자에게 돌아왔을 땐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유명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미국과 일본에서 부쩍 성장해버린 음악 프로듀서. 그녀가 기획한 음반과 음악을 이용하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성장한 사람도 자신이 사랑하는 한 남자의 입대 앞에서는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세차게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한 남자를 군대에 보내야만 했다. 다섯 살의 나이차이. 바람 속에서 들리지도 않을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며 간신히 꺼낸 말이 ‘기다리겠다’는 말이었다. 그리고는 남자의 한 팔을 잡아끌어 안아주었다. 그들 사이에는 다섯 살이라는 나이차이도, 거세게 부는 바람소리도, 공유하지 못했던 긴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가볍지만 아픈 체온만이 그들 사이에 존재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2년. 빠르게 흐르는 시간은 그렇게 흘렀고 남자는 제대했다. 사람들의 축복과 환영 속에서, 남자는 다시 만난 여자의 모습에 너무나도 행복했다.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2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던 남자는, 여자와 함께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득했다. 2년간 그녀는 더욱더 성장해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그런 여자를 동료들은 물론 남자 역시 놀라워했다. 여자는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프러포즈를 했고, 어눌하지만 어색함이 가득한 프러포즈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친구의 한마디에 발목을 붙잡혀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애 엄마잖아!』
아이가 있는 여자의 남자가 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한 남자였다. 너무나도 어른이었던 여자와 한없이 아이었던 남자. 시간의 흐름은 사람을 적응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던 남자였지만, 화장실에서 10년 지기 친구에게 들은 그 한마디 때문에 남자는 커다란 부담감을 가지고 만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집으로 데려다주며 이야기했다.
『학생이 아이엄마랑 결혼하는 것, 좋게 보이지는 않을 거야.』
2년의 시간을 앞으로 천천히 메워 가면 된다고 생각했던 남자였기에 그 말을 뱉어내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남자는 지금까지 들어왔던 여자의 이야기와는 상이한 현재의 배경과 삶의 모습을 육감적으로 느끼며 위화감을 느끼게 되었다. 남자가 시간의 흐름이 그러한 것이냐며 반문하고 있었을 때, 여자는 남자에게 현실을 보여주었다. 바뀐 생활환경, 남자는 모르고 있었을 여자의 지인, 그리고 여자의 아이…. 여자가 한 말에 남자는 더욱더 놀라고 당황했다.
『하지만 아빠가 너라면 다시 생각할 거니?』
「삐삐삐삐, 삐삐삐삐….」
왼손으로 자명종시계를 끈다.
「삐….」
시끄럽게 울리던 자명종소리는 멎어버렸다. 반 정도 열린 커튼 틈을 통해 햇살이 들어오는 작은방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엎드려 누워있는 상태로 중얼거렸다. 무언가에 의한 충격 때문일까?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사람이 한 사람.
“…누구였지?”
너무나도 긴 꿈을 꾸고 난 기분이었지만 사실은 현실이었다. 꿈의 내용은 5년간의 모든 이야기를 짤막하게 담고 있었지만, 그렇게라도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지금 기억하라면 다 기억하지 못할 현실의 이야기들. 하지만 꿈에서는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구부정한 몸을 기듯 움직여 구석으로 엉덩이를 붙여 몸을 돌려본다. 그리고 쪼그려 앉아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둘. 내 환영회 때에는 누가 왔었는지, 그리고 내가 소연누나의 집에서 보았던 그….
“누구였더라….”
“아웅, 시끄러…!”
베개가 날아왔다. 날아오는 베개를 정확하게 받아내며 나는 슬며시 웃어본다. 이 누나가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이 곳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안도의 한숨도 함께 나왔다.
“누나, 깼어요?”
“너 때문에 깼엉.”
누나는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은 상태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쪼그려 앉았다. 시끄러운 소리에 시달린 듯 고개를 가슴에 파묻고 있는 누나를 보고 있자니, 해마가 떠올라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 계속.
미로(the Labyrinth) retake 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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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10/19 22:39 | the labyrinth rv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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