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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the Labyrinth).retakeversion.030.

 


하지만 나의 탐탁지 않은 대답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흐름상 또 내가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게 아니면 민우가 정말 걱정되는 것이었을까. 선희의 표정은 어쩐지 5초전과 달리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다시 메모지로 시선을 옮겼다.
“…음, 선희야.”
“네?”
메모지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려 테이블 바로 위까지 내렸다가 선희에게 건네었다. 선희는 얼떨결에 받아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메모지에 적힌 내용이 자신의 방향으로 놓고 한번 읽고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또 뭐 없니?”
선희의 표정은 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내게서 받아 든 메모지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아이보리색 그 작은 핸드백에서 핸드백만한 수첩을 꺼냈다. 그 곳에는 무언가 많이 적혀있는 것 같았는데, 적혀있는 것을 내게는 보여주지 않으면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어보기 시작했다.
“음…, 승재오빠는 물론 ‘흰 여우’겠죠?”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간첩신고’ 공익포스터이지만, 적어도 우리들이 중학생이었을 때만 하더라도 학교에 작은 포스터로 여기저기 붙어 있었던 것이 ‘간첩신고는 113’이라는 포스터였다. 참으로 예전의 이야기가 될 것 같지만, 양의 탈을 쓰고 있는 음흉한 늑대의 모습이 그려진 포스터에 ‘주변에 혹시 이런 사람 없습니까?’라는 문구가 들어있던 포스터. 우리 근처에 그런 이중성을 띈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을 세워주려는 포스터였는데, 언젠가 우리는 학교에 붙어있던 그 포스터에 묘하게 매료되어 달려가던 발걸음을 멈춰 섰던 적이 있었다.
“이 포스터 아이디어, 괜찮은데?”
그 녀석이 말했었다. 아이디어가 멋지다고. 나는 동화를 베낀 거 아니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녀석은 팔짱을 끼고 한쪽 손은 턱을 괴며 ‘범상치 않다’며 좋아했다.
“뭐더라, 그 빨간 모자던가? 참, 그건 양이 아니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 이야기에 괜히 어조가 경직되어있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왜 애기 양들이 ‘엄마 손은 하얀 색이니까 손 내밀어주세요’하는 이야기 있었잖아?”
“아, 맞다. 그 늑대가 밀가루 손에 발라서…. 그런데 그 이야기가….”

아마 우리가 이야기하게 된 ‘검은 사슴과 흰 여우’는 동화를 패러디했던 반공포스터의 패러디라고 생각한다. ‘검은 사슴과 흰 여우’라는 표현은 연합서클시절부터 써 왔던 표현으로, 적군인가 아군인가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플라시보’시절 우리가 만들었던 ‘이야기 암호’를 얼마나 이해하고 적확하게 사용할 수 있는가를 의미하기도 했다. 편 가르기. 누가 적인지를 알아야 제대로 된 정보를 올바른 곳에 전달할 수 있다. 이것은 현재 위험에 빠져있는 우리 편에게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사사로운 정을 모두 제거해야만 비로소 올바른 답을 도출할 수 있다는 무정함이 전제가 되기는 하지만.
“…응, 그렇지.”
선희는 빙긋 웃으면서도 나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물음은 이어졌다.
“진호라는 오빠는요?”
“그 놈도 ‘흰 여우’일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은 알기 힘들다. 심지어 추측하기도 힘들다. 믿었던 사람이 쉽게 배신하고, 약속을 지킨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끝끝내 약속을 어기는 세상. 사기와 거짓말이 난무하는 사람 사이의 배신 속에서, 세상은 소수의 속이는 사람과 다수의 속는 사람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 이미 속세에 너무 찌들어버려 구제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하고 반성하게 된다. 그 것이 어른의 세계라며 일부러라도 자위하려고 하면, 반드시 그러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결론으로 내게 된다.
“몇 퍼센트요?”
“너 상당히 집요하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가 진호라는 친구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친구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 자체로 이미 나는 되돌릴 수 없는 불신을 시작해 버린 셈이었다. 얼마나 그 녀석을 믿을 수 있을까? 나의 비밀을 모두 말해도 퍼져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가? 서로는 얼마나 깊은 신뢰감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그 녀석을 얼마나 믿고 있으며, 반대로 그 녀석은 나를 얼마나 믿고 있을까? 주고받는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들 사이에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신뢰라는 것은 있는가? 사람에 의해, 권력에 의해, 돈에 의해 휘둘리지 않을 자신은 있는가? 대답하기 어려워졌다. 곤란하다. 마른침을 꿀꺽하고 삼킨다. 어떻게든 대답은 해야 한다고 내게 말한다.


- 계속.



미로(the Labyrinth) retake version.
original story by Dory, "the Labyrinth" copyrights 2005-2009 Wishwill NET all rights reserved.
arranged rights 2008-2009 by catty D.




by catty D。 | 2009/11/02 21:53 | the labyrinth rv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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